[공감]기후침묵과 기후위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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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밥 한 끼 먹고 설거지를 하는 데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가 다섯 개나 나왔던 저녁,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업이 수미산만큼 쌓이기 전,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가 수미산 높이를 넘길 것 같다는 낭패감이 밀려온 저녁, 나는 기후변화라는 말이 내 마음속에선 미래시제인지, 현재시제인지를 생각했다. 50일 가까이 장맛비가 퍼붓고 있었고, TV 뉴스 화면으로는 제방이 무너져 읍내 전체가 물에 잠긴 마을들, 산사태로 여기저기 끊긴 도로의 모습들이 속보로 쏟아지고 있었다. 기상청은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지방의 이상고온 현상”을 기록적 장마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북극지방 기온이 평년의 2배가 넘게 오르면서 중위도까지 찬 기온이 내려와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정체전선이 오락가락하는 동안 폭우를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기후변화의 국제법적 정의는 ‘직간접적인 인간 활동의 결과 지구 대기의 구성이 바뀌고 기후가 자연적 변동의 범위를 넘어 변하는 현상’이지만, 어쩐지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처럼 읽힌다. 현재 상황에 비춰보면 기후변화라는 말이 너무 한가해, 기후위기로 불러야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늘의 일을 내 힘으로 어쩔 것인가, 나 하나가 어쩐다고 기후가 달라질 것인가라는,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방관을 합리화할 수 있게 해준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심리에 대해 전문가와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기후변화의 심리학>을 펴낸 조지 마셜은 “손실과 이익의 조합으로 이뤄진 온갖 경우의 수 중에서 기후변화는 단연코 가장 어려운 조합”이라고 말한다. 당장 내가 겪지 않을 것 같은 장기적 손실을 완화하기 위해 지금껏 당연히 여겨왔던 생활양식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거나 포기하는 단기 손실을 감수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섰다는 과학자들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평균 1인당 연간 5t 정도다. 한국의 경우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1.7t이다. 영국 같은 나라가 2007년부터 10년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31.4% 줄이는 동안 한국은 22.8%가 늘어났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현재 세계 7위다.
이런 숫자들을 무감각하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주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들은 삼성그룹 서초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삼성물산의 베트남 신규 석탄발전소 건립 참여 계획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그린 뉴딜을 통해 2025년까지 국내에서 1229만t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시위에 참여한 한 학생은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사업은 연간 66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입니다. 붕앙2 석탄발전소를 2년 돌리면 그린 뉴딜을 통해 줄이겠다고 한 온실가스 감축은 무쓸모, 무소용이 되는 셈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국경 안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하면서, 나라 밖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어쩌다 태어나보니 이런 지구’에 살게 된 청소년들은 현재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난 3월 청소년 19명이 ‘정부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서 헌법이 보장한 생명권, 행복추구권,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환경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소년들은 기후변화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체감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시스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찌는 더위나 폭우가 쏟아져서야 기후변화 문제에 고개를 돌리는 나 같은 사람의 기후침묵이 기후위기 세대인 젊은 그들을 분노하게 하고 절박하게 하는 것이리라.
정은령 언론학 박사
▶ 장도리
[경향신문]
밥 한 끼 먹고 설거지를 하는 데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가 다섯 개나 나왔던 저녁,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업이 수미산만큼 쌓이기 전, 내가 만들어낸 쓰레기가 수미산 높이를 넘길 것 같다는 낭패감이 밀려온 저녁, 나는 기후변화라는 말이 내 마음속에선 미래시제인지, 현재시제인지를 생각했다. 50일 가까이 장맛비가 퍼붓고 있었고, TV 뉴스 화면으로는 제방이 무너져 읍내 전체가 물에 잠긴 마을들, 산사태로 여기저기 끊긴 도로의 모습들이 속보로 쏟아지고 있었다. 기상청은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지방의 이상고온 현상”을 기록적 장마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북극지방 기온이 평년의 2배가 넘게 오르면서 중위도까지 찬 기온이 내려와 북태평양고기압이 북쪽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정체전선이 오락가락하는 동안 폭우를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https://imgnews.pstatic.net/image/032/2020/08/26/0003028794_001_20200826030211254.jpg?type=w647)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심리에 대해 전문가와 평범한 사람들을 인터뷰해 <기후변화의 심리학>을 펴낸 조지 마셜은 “손실과 이익의 조합으로 이뤄진 온갖 경우의 수 중에서 기후변화는 단연코 가장 어려운 조합”이라고 말한다. 당장 내가 겪지 않을 것 같은 장기적 손실을 완화하기 위해 지금껏 당연히 여겨왔던 생활양식을 위험한 것으로 여기거나 포기하는 단기 손실을 감수하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섰다는 과학자들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지구 온도 상승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평균 1인당 연간 5t 정도다. 한국의 경우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11.7t이다. 영국 같은 나라가 2007년부터 10년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31.4% 줄이는 동안 한국은 22.8%가 늘어났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9년 현재 세계 7위다.
이런 숫자들을 무감각하게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주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청소년들은 삼성그룹 서초 사옥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삼성물산의 베트남 신규 석탄발전소 건립 참여 계획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그린 뉴딜을 통해 2025년까지 국내에서 1229만t의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시위에 참여한 한 학생은 “베트남 붕앙2 석탄발전사업은 연간 66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사업입니다. 붕앙2 석탄발전소를 2년 돌리면 그린 뉴딜을 통해 줄이겠다고 한 온실가스 감축은 무쓸모, 무소용이 되는 셈입니다”라고 지적했다. 국경 안에서는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하면서, 나라 밖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어쩌다 태어나보니 이런 지구’에 살게 된 청소년들은 현재 상황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난 3월 청소년 19명이 ‘정부가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아서 헌법이 보장한 생명권, 행복추구권, 정상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환경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소년들은 기후변화를 발등에 떨어진 불로 체감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아니라 시스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찌는 더위나 폭우가 쏟아져서야 기후변화 문제에 고개를 돌리는 나 같은 사람의 기후침묵이 기후위기 세대인 젊은 그들을 분노하게 하고 절박하게 하는 것이리라.
정은령 언론학 박사
▶ 장도리